본문 바로가기

궁중요리

궁중의 명절 음식 – 설, 추석, 동지에 올랐던 수라

1. 명절은 정치이자 예(禮)였다 – 왕실의 절기 수라

키워드: 궁중 명절, 수라 예법, 조선 명절 음식

조선시대 궁중에서 명절은 단순한 휴일이 아니라 국가 의례의 일환이었습니다.
왕은 백성과 조상, 자연에 감사하는 의미로 명절을 맞이했고,
그에 따라 왕실에서도 엄격한 절차에 따라 절기 수라상이 차려졌습니다.

대표적인 궁중 명절은 **설날(정월), 추석(팔월), 동지(십이월)**이며,
이날은 특별히 왕이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올리거나, 왕비와 대비, 세자빈에게 진찬(進饌)을 베푸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궁중 명절 음식은 이렇듯 왕실의 효와 예, 정치적 상징성, 계절과 건강까지 고려된 정교한 음식 구성으로 이뤄졌습니다.

수라는 평소보다 더 풍성하게 차려졌고,
왕이 음식을 신하들에게 하사하거나, 음식 일부를 백성에게 나누는 **‘음식의 정치’**도 이뤄졌습니다.
명절 음식은 곧 왕실의 통치 미학과 백성과의 유대를 보여주는 도구였던 셈입니다.

 

 

궁중의 명절 음식 – 설, 추석, 동지에 올랐던 수라

2. 설 – 떡국과 만두, 새해를 여는 백색의 수라

키워드: 궁중 떡국, 정월 진찬, 만두국

설날(정월 초하루)은 조선 궁중에서도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절기였습니다.
이날의 핵심 음식은 바로 떡국(가래떡국).
‘떡국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는 민간의 속설은 궁중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으며,
길고 흰 가래떡은 장수와 정결, 새 출발을 상징하는 중요한 식재료였습니다.

왕은 설날 아침에 정중히 떡국 수라를 받았고,
함께 편육, 전, 조기구이, 나물, 전복초, 약과, 식혜 등도 곁들여졌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손님 접대와 가족 진찬이 많았기 때문에,
만두국도 함께 자주 등장했으며,
궁중에서는 이를 **‘편자탕’ 또는 ‘교자탕’**이라고 불렀습니다.

떡국은 맑은 육수에 얇게 썬 가래떡을 넣고,
지단, 소고기볶음, 김가루를 올려 품위 있고 단정한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특히 쌀을 곱게 갈아 만든 백떡은 왕의 위엄과 정결함을 강조하는 상징적인 음식이었습니다.

 

 

3. 추석 – 오곡이 담긴 송편과 햅쌀 음식

키워드: 궁중 송편, 추석 진연, 명절 수라

추석은 팔월 보름날, 수확과 보름달을 기념하는 날로
조선 궁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명절 중 하나였습니다.
이때의 대표 음식은 송편이며, 궁중에서는 특히 곱고 색감이 고운 다색송편이 등장했습니다.

궁중 송편은 일반 송편과 달리

  • 쑥, 치자, 백년초, 단호박 등 천연 재료로 색을 낸 반죽
  • 속에는 꿀을 섞은 콩가루, 잣, 대추 등 고급 재료 사용
  • 작고 정갈한 크기, 모양은 반달형
    으로 만들었으며,
    이는 풍요와 정결, 조화를 상징하는 디테일이었습니다.

추석 수라에는 송편 외에도

  • 햅쌀밥, 무나물, 갈비찜, 도라지생채, 전유어, 화양적, 배숙, 약과, 식혜 등이 함께 올랐고,
    특히 왕이 농사의 풍요를 기념하는 의미로
    신하들에게 송편이나 전을 하사하는 장면도 자주 기록되어 있습니다.

추석의 보름달은 어머니와 가족을 떠올리는 달로 여겨졌기에,
대비나 왕비를 위한 다과 진찬이 함께 이루어졌고,
생과방에서는 궁중 배숙, 대추정과, 유밀과 등을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4. 동지 – 팥죽과 부적, 음양의 조화를 담은 음식

키워드: 동지 팥죽, 궁중 절기 음식, 액막이 음식

동지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로, 음의 기운이 극대화되는 시기입니다.
조선 왕실에서도 이 시기에 팥죽을 먹는 풍습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이는 단지 풍속이 아니라 악귀를 쫓고 왕실의 안녕을 비는 상징적인 의례였습니다.

궁중의 동지 팥죽은

  • 붉은 팥을 고아서 체에 곱게 내린 뒤, 찹쌀 새알심을 넣어
  • 매우 곱고 부드러운 질감으로 조리
    되었으며,
    특히 죽을 담는 그릇은 청자나 백자로 격조 있게 준비되었습니다.

또한 이 날에는 ‘부적’이나 ‘동지헌말(冬至獻物)’이라 하여,
왕실의 각 전각에 팥죽을 조금씩 나누어 보내
병마와 악귀를 막는 액막이 의식을 치렀습니다.
이 풍습은 오늘날 민간의 팥죽 문화로도 이어지고 있죠.

동지 수라에는 팥죽 외에도

  • 전복죽, 쇠고기전, 동치미, 무나물, 호박나물, 약과 등이 함께 올랐으며,
    이러한 음식 구성은 겨울철 신장 보호와 체온 유지, 건강 보양을 동시에 고려한 식단이었습니다.